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뒷 이야기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뒷 이야기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뒷 이야기에 알아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연합군의 공세로 항복을 외치기 일보 직전이었으나 항복을 외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히로시마에 8월 9일에는 '펫 맨'을 나가사키에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히로시마에서는 최대 16만6천명이 사망하고 나가사킹에서는 8만명이 사망했다. 결국 6일 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히로미사와 나가사키를 원폭투하의 대상으로 지정한 이유는 두 도시가 모두 일본의 기초가 되는 도시였다는 점이다. 히로시마는 산업지대 가운데에 있는 군사 거점이었고 주변에 언덕이 있어 폭격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원자폭탄 투하 후에 엄청난 논쟁이 이어졌는데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일본을 상대로 과연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것이다. 또한 사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 내에서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추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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