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군사적 이용가치
왜의 침략이 있었던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중앙군을 5군영 체제로 정비했다.
당시 조정은 중앙군의 5군영 중 한양의 남부와 남한산성을 수비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수어청'을 남한산성에 배치해 군사적으로 이용하였다.
수어청은 5개 영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각의 영은 일정구간을 담당하였다.
또한 산성에 걸맞게 승려들도 수비에 가담하여 당시 남한산성에는 많은 승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남한산성안에는 9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사찰에는 무기와 탄약을 보관하는 병기고와 화약고가 설치되었으며 무기와 탄약도 승려가 관리했다고 한다. 이때 승군은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아닌 사찰에서 차출되어 매년 2개월씩 수성(경계배치)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또한 남한산성은 한양의 바로 아래인 수원에 위치해 있어 남쪽에서 올라오는 조세미를 비축할 수 있어 조정의 조세미 관리에도 큰 공헌을 했다. 많은 조세미가 쌓여있어 군사를 운용하기 수월하였으며 그 수가 2만 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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